[세월호 의혹의 확정 ⑩] 해경 123정 3

지난 회에 기관실 선원 7명은 9시 6분경 3층 기관실 선원 선실 앞 복도에 집결하여 9시 39분경 해경에 의해 구조될 때까지 30여 분 동안 조타실에 연락도 하지 않고, 엔진이나 발전기를 살펴보지도 않고, 승객들의 상황도 알아보지 않은 채 가만히 대기만 하고 있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세월호 3층 도면. ⓒ선장선원재판 1심 제13회 공판조서

위 그림은 세월호 3층 도면입니다. 오른쪽이 선수 방향, 왼쪽이 선미 방향, 위쪽이 좌현 방향, 아래쪽이 우현 방향입니다. 세월호는 좌현으로 기울어졌으므로 위 도면상으로는 위쪽 부분이 아래로 기운 상황입니다.

▲세월호 3층 도면 일부 확대. ⓒ선장선원재판 1심 제13회 공판조서

도면의 일부를 확대해 보았습니다. 기관실 선원 7명이 30여 분 동안 대기하고 있던 위치가 점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7개의 점을 왼쪽의 4개와 오른쪽의 3개로 나누었을 때, 왼쪽에 조기장 및 조기수 3명이 있었고 오른쪽에 기관장과 1등 기관사, 3등 기관사가 대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기관실 선원들이 대기하고 있던 복도를 기준으로 5명은 자신의 방이 좌측에 있었고, 2명은 우측에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좌현으로 기울어진 상황에서 좌측에 있는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아래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것을 의미하고, 우측에 있는 방에 들어갔다 나오는 것은 위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관실 선원 7명은 모두 자신의 선실에 들어가서 구명동의를 입고 나왔으므로 밑으로 내려가는 것도, 위로 올라가는 것도 모두 가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이동이 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이들은 30여 분 동안 그냥 대기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배가 점점 더 기울어 물이 차오를 상황이 되어가자 왼쪽의 점 4개와 오른쪽의 점 3개 사이에 있는 통로를 통해 기관실 선원들은 갑판으로 나아갔고, 때마침 다가오던 해경 123정의 고무단정에 의해 세월호에서 가장 먼저 구조됩니다.

이에 대해 한 희생자 학생의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피고인들의 진술을 정확히 종합해 보면, 기관실에 있던 피고인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았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따뜻하게 끈끈한 뱃사람들만이 가지고 있는 동료애 때문이었겠지만, 사고가 발생하자마자 기관장 박○○는 즉시 전화를 걸어 기관실로부터 탈출을 지시했고, 제때에 구명조끼를 찾아 입었고, 뛰어내리지 않아도 될 시기를 정확히 맞추어 해경이 도착했고, 바로 눈앞에 외부로 나가는 출입문 앞에서, 말 그대로 구조되기를 기다리면서 여유 있게 캔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기회를 하나님이 선물했기 때문입니다. 304명의 소중한 목숨이 별이 되는 그 순간에도 하나님은 피고인들에게만 아주 커다란 특권을 주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는지, 아니면 피고인들이 만든 기회인지 이 재판부에서 정확히 판단해 주실 것을 강력히 희망합니다.”(선장 선원 재판 항소심 제4회 공판조서)

문제는 해경이 선원들을 구조했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선원들’만’ 구조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해경 고무단정에 기관실 선원들을 구조하는 바로 그 순간 세월호는 빠르게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고무단정이 처음 세월호에 접안하여 기관실 선원을 태우는 모습(09:39:16경). ⓒ 해경 123정 채증영상

“맨 처음 3층 객실에 있는 승객을 구조하면서 세월호 현측을 직접 손으로 잡았는데 손에 배가 기울고 있다는 느낌이 올 정도로 빠르게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해양경찰이라면 누구라도 50도 이상 기운 세월호를 보고 침몰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박모 경사 검찰 진술조서 1회)

처음 123정에서 고무단정이 출발할 때 단정에는 타고 있던 해경 2명 중 한 명인 박모 경사의 진술입니다. 또 한 사람은 단정을 조종하였던 김모 경장입니다.

123정의 승조원 전원은 세월호 안에 승객이 약 450명 정도 탑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목포상황실에서 처음에 출동 명령을 내릴 때는 350명이라고 이야기해주었고, 나중에 450명으로 정정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23정이 처음 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승객들은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세월호는 50도 이상 기울어져 있고 빠르게 침몰하고 있는 중입니다. 한 승조원은 직접 손으로 세월호를 짚어서 이를 몸으로 확인하기도 하였고, 직접 짚어보지 않고 그냥 육안으로 확인만 하더라도 해경이라면 누구나 이 배가 곧 침몰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해경뿐 아니라 당시 탈출했던 기관실 선원 역시 이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검사: 피고인은 구명단정이 세월호에 접안했을 때 곧 세월호가 침몰할 것을 충분히 예상했지요.
이모 3등 기관사: (울면서 고개를 끄덕이다)
검사: ‘예’라고 고개를 끄덕인 것이지요.
이모 3등 기관사: 예.
(선장 선원 재판 1심 제14회 공판조서)

해경도 선원도 모두 배가 곧 침몰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너무나도 당연히 승객들을 퇴선시키기 위해 일정한 조치를 취해야 했지만 해경도 선원도 그러지 않았습니다. 지난 회에 말씀드린 바와 같이 해경은 세월호에 진입하여 일부는 조타실로 가서 퇴선 방송을 하고 나머지는 흩어져서 승객들 퇴선 안내를 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세월호를 직접 손으로 짚었던 박모 경사는 경사가 너무 심해서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합니다.

검사: 진술인을 비롯한 123 승조원들은 아예 세월호 내부에 진입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 아닌가요.
박모 경사: 제가 처음 단정으로 세월호 가까이 진입했을 때 세월호가 많이 기울어 더 이상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진입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박모 경사 검찰 진술조서 1회)

하지만 이는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잠시 후에 올라간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무단정이 처음 세월호에 접안한 9시 39분경보다 5분 정도 후인 9시 44분경 고무단정이 세 번째로 접안했을 때, 세월호가 5분 전보다 더 기울어진 상황임에도 한 해경은 세월호의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물론 주관적으로 올라가기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만약 그랬다면 대신 어떤 다른 조치를 취했어야 합니다. 침몰 상황을 정장에게 보고하여 지시를 받는다거나, 123정에서 메가폰을 가지고 와서 세월호 바깥에서 퇴선 방송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이 있었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조치는 취하지 않고 그냥 알아서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만 고무단정에 태우는 행위만 반복했던 해경이 경사가 심해서 진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진입할 의사가 없었다는 이야기일 뿐입니다. 경사가 가파른 상황이라서 진입하지 못하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한 전문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입니다. 설사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도구 등을 이용해서 가능한 방법을 찾아보아야 합니다. 시도조차 안 해보고 불가능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황모 소방안전본부 감찰조정관 검찰 참고인 진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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