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대회에서 메달을 따왔던 슬라바

원고 2학년 4반에는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슬라바라는 학생이 있었다. 풀 네임은 세르코프 야체슬라브 니콜라예비치. 부모님은 슬라바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에 슬라바를 수영학원에 보냈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크고 팔다리가 길었던 슬라바는 수영 대회에서 여러 개의 메달을 따오기도 하였고, 정식 수영선수가 되는 것을 고려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렇게 수영을 잘했던 슬라바는 세월호 참사에서 생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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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바가 각종 대회에서 따 왔던 메달들 (ⓒ 프레시안)

생존수영의 도입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 중의 하나가 초등학교에 ‘생존수영’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그해에는 초등학교 3학년만이 대상이었고 이후 계속해서 대상을 확대하고 있는 중이다.

빠르게 헤엄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영법수영’과는 달리 ‘생존수영’은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물에 떠서 견디는 시간을 늘리는 수영법을 말한다. 즉 초보자라도 단시간에 물에 뜰 수 있게 하고 그 상태로 오래 버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자, 이제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겠다. 세월호 참사에서 승객들이 사망한 이유가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승객들이 물에 떠서 견디지 못했기 때문일까?​

▲ 생존수영을 배우는 아이들 (ⓒ 연합뉴스)

세월호 승객들이 사망한 이유

분명히 이야기하겠다. 세월호 참사에서 승객들이 사망한 이유는 승객들이 수영을 잘 못해서가 아니다.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승객들이 물에 떠서 견디지 못했기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구조대는 이미 도착해 있는 상태였다.

선원들은 승객들에게 절대로 움직이지 말고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을 1시간 가까이 반복하였고, 현장에 도착한 해양경찰은 승객들이 선내에 전부 대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승객들을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간단히 말해 선원들이 승객들을 배 안에 가뒀고, 해경은 이를 알면서도 방관했다. 그 결과가 304명의 사망이다.

생존수영이라는 이데올로기

앞에서 보았듯이 슬라바는 수영대회에서 메달을 따 올 정도로 수영을 잘했지만 생존하지 못하였다. 단원고 교사 고창석 선생님은 체육교사였고 인명구조사 자격증을 갖고 있을 정도로 수영을 잘 했지만 역시 생존하지 못하였다. 그렇다면 생존수영이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될 수 있는 것일까?

물론 초등학생들이 비상시에 대비하여 생존할 수 있는 수영능력을 갖추는 것 자체는 좋은 일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의 교훈으로 생존수영이 계속해서 회자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생존수영의 도입은 세월호 참사를 ‘안전문제’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던 박근혜 정부의 이데올로기적 전술, 즉 허위의식을 만들어 내려고 했던 시도라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상황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진상규명을 방관하는 문재인 정부

우리는 지금도 왜 선원들이 계속해서 선내대기방송을 했는지, 현장에 도착한 해경이 왜 승객들을 밖으로 나오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알지 못한다. 왜 선원들이 자신들이 탈출하는 바로 그 순간까지도 선내대기방송을 계속했는지, 왜 해경은 선원들만 표적 구조하고 승객들에 대해서는 조치를 취하지 않았는지 알지 못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도 3년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월호 진상규명이 0%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세월호 문제가 ‘안전’문제라는 이데올로기, 세월호 참사의 교훈이 ‘생존수영’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점점 더 강화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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